AI 시대 소비자의 변화, 브랜드 전략을 다시 쓰다
AI가 소비자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브랜드를 둘러싼 경쟁의 규칙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진 가운데 소비자가 브랜드에 기대하는 역할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마케팅·광고 기업 덴츠(dentsu)는 최근 발표한 미래 전망 보고서 ‘Consumer Vision 2035: Mothers of Reinvention’을 통해 향후 5~10년 동안 소비자와 브랜드 관계를 뒤흔들 핵심 변화들을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전 세계 25개 국가 소비자 3만 명과 문화사회학, AI 법률, 소비자 심리학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덴츠는 AI 확산과 사회문화적 변화가 소비자의 정체성, 구매 동기, 브랜드 기대 수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소비자가 더 이상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구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미래의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비의 목적은 ‘필요’에서 ‘재창조’로 이동한다
오랫동안 소비는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 이해됐다.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개인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면서 소비자의 관심은 점차 자기 변화와 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덴츠는 이러한 변화를 ‘무한 재창조(Infinite Reinven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AI와 디지털 도구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생애 동안 여러 차례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을 실험할 수 있게 됐다. 직업을 바꾸고, 취미를 확장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과거보다 훨씬 쉬워진 것이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 세계 소비자의 81%는 가장 의미 있는 구매가 자신의 잠재력을 열어주는 경험과 연결된다고 답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제품 자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의 자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브랜드가 제공해야 하는 가치 역시 바꾸고 있다. 제품 기능을 강조하는 접근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브랜드는 소비자의 성장 여정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표 1. 소비자의 구매 기준 변화
| 기존 소비 패턴 | 새로운 소비 패턴 |
|---|---|
| 필요한 것을 구매 | 되고 싶은 자신을 위해 구매 |
| 문제 해결 중심 | 성장과 변화 중심 |
| 기능적 가치 | 잠재력 확장 가치 |
| 현재 만족 | 미래 가능성 |
AI 에이전트 시대, 브랜드는 소비자보다 ‘에이전트’를 설득해야 한다
기술 변화 역시 브랜드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덴츠는 향후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소비자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자는 원하는 목표와 예산, 선호 조건만 설정하고 실제 탐색과 비교, 구매 과정은 AI 에이전트에게 맡기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가 소비자뿐 아니라 소비자를 대신하는 AI 시스템과도 경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검색 엔진 최적화(SEO)가 중요했던 시대를 넘어 AI 에이전트 최적화가 새로운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보고서는 이를 ‘공생 시스템(Symbiotic Systems)’이라고 정의한다. 인간과 AI가 함께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환경에서 브랜드는 알고리즘이 추천할 수 있는 신뢰성과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실제로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알고리즘이 더욱 개인화될수록 브랜드가 가치와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AI가 구매를 대신하는 시대에는 소비자보다 알고리즘에게 신뢰받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표 2. AI 시대 브랜드 경쟁 요소
| 기존 경쟁 요소 | 미래 경쟁 요소 |
| 광고 노출 | AI 추천 가능성 |
| 가격 경쟁력 | 신뢰와 일관성 |
| 인지도 | 알고리즘 적합성 |
| 검색 노출 | 에이전트 친화성 |
브랜드의 역할은 판매자가 아니라 길잡이로 진화한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가장 큰 변화는 브랜드의 역할이다.
과거 브랜드는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적절한 제품을 제공하는 공급자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AI가 기능적 상호작용 대부분을 처리하게 되면 브랜드의 존재 이유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덴츠는 미래 브랜드를 ‘웨이파인더 브랜드(Wayfinder Brands)’라고 정의한다. 길을 찾는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처럼 브랜드가 소비자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사 결과 전 세계 소비자의 87%는 자신이 성장하도록 돕는 브랜드를 가장 오래 기억한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 인지도보다 소비자의 인생 목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랜드는 이제 제품 판매보다 소비자의 열망을 이해하고 그 열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소비자의 목표를 해석하고 적절한 경험을 연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개인화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 공명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 맞춤형 마케팅은 더 이상 경쟁 우위가 되기 어렵다.
생성형 AI는 누구나 정교한 개인화 메시지를 만들 수 있게 만들었다. 문제는 소비자 역시 이러한 메시지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의 78%는 AI가 발전할수록 진부하고 획일적인 메시지에 대한 인내심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84%는 본능적 감정을 자극하는 브랜드를 더 오래 기억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미래 브랜드 경쟁이 정확한 타기팅보다 감정적 연결 능력에서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패밀리마트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에 눈물을 흘리는 주먹밥 캐릭터 스티커를 부착한 사례는 대표적인 예다. 할인 판매를 강조하는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이라는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연간 약 3000톤의 폐기물 감소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는 AI가 만든 완벽한 메시지보다 자신을 움직이는 의미 있는 경험에 더욱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하고 있다.
표 3. AI 시대 브랜드 차별화 요소
| 자동화되는 영역 | 차별화되는 영역 |
| 개인화 추천 | 감정적 공감 |
| 상품 비교 | 문화적 의미 |
| 구매 편의성 | 영감과 동기 |
| 정보 제공 | 인간적 연결 |
성장 욕구와 피로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해서 끊임없는 자기계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덴츠는 소비자가 성장에 대한 열망과 동시에 피로감도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나은 자신이 되라는 압박은 오히려 거부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브랜드는 소비자의 성장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휴식과 자기 수용의 가치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스포츠 브랜드 온(On)이 세서미 스트리트의 엘모 캐릭터와 진행한 ‘Soft Wins’ 캠페인은 이러한 균형을 보여준다.
이 캠페인은 달리기를 경쟁이나 기록 향상이 아니라 꾸준함과 자기 배려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소비자가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큰 공감을 얻었다.
향후 브랜드 경쟁력은 더 많이 성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성장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도록 돕는 능력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의 미래는 소비자의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AI는 브랜드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의 기대 수준도 높이고 있다. 기능적 경험과 정보 제공은 점차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브랜드의 차별화 요소는 편의성이 아니라 의미가 될 전망이다.
덴츠는 앞으로 성공하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소비자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소비자의 성장과 변화, 정체성 형성을 지원하는 브랜드가 더 강한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는 의미다.
브랜드는 이제 문제 해결자에 머물 수 없다. 소비자의 삶을 이해하고 가능성을 확장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AI가 대부분의 기능적 가치를 자동화하는 시대가 다가올수록 브랜드의 경쟁력은 기술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