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은 지난 2년간 대통령 공석 사태를 겪으며 14차례의 선출 시도가 모두 무산됐다. 이러한 정치적 마비 상황 속에서 레바논의 대표적 일간지인 안나하르(AnNahar)는 전례 없는 해법을 제시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AI 대통령(The AI President)’을 공개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AI 대통령의 탄생 배경
레바논은 오랜 기간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13차례에 걸친 국회 표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했고, 이는 정부 구성 지연, 정책 마비, 사회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안나하르는 언론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AI 대통령’을 개발했다.
AI 대통령은 안나하르가 지난 90년간 쌓아온 방대한 보도 자료, 즉 1930년대부터 이어온 공정하고 객관적인 저널리즘을 토대로 훈련된 대형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레바논 국민에게 투명하고 일관된 의사결정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AI 대통령은 안나하르 편집장 나일라 투에니(Nayla Tueni)의 주재로 생중계에서 공개됐다. 투에니는 발표 당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기력한 정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이라며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중계 후에는 AI 대통령이 직접 인터뷰에 참여해 현재 레바논이 직면한 경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후 안나하르는 AI 대통령을 중심으로 특별 신문판을 발행해 공공서비스, 인프라, 교육,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참여형 플랫폼 OurPresident.ai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위해 AnNahar는 AI 대통령의 온라인 플랫폼 ‘OurPresident.ai’를 개설했다. 이 플랫폼은 레바논 국민 누구나 접속해 정치, 법률, 행정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AI로부터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특히, AI 대통령은 단순한 답변을 넘어 현재 정부 관계자들과의 협업에도 활용되며 실제 정책 수립에도 기여하고 있다.
사회적 반향과 언론의 역할
이번 캠페인은 AnNahar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했다. OurPresident.ai를 통한 질문 응답 수는 이미 10만 건을 돌파했고, AI 대통령이 소개된 특별판 신문은 안나하르 90년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호로 기록됐다. 캠페인을 통해 신문 구독은 28% 증가했고, 2,500만 달러 이상의 홍보 효과도 얻었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IMPACT BBDO의 지역 책임자인 조 아부-칼레드는 “정치적 의제가 혼재한 사회에서 독립 언론은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평가했다.
기존 캠페인과의 연계성
AnNahar는 이전에도 정부 부재 상황에 대응해 ‘빈 지면 신문(Blank Edition, 2018)’과 ‘선거판 회수 캠페인(2022)’ 등 창의적인 방식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해 왔다. AI 대통령 캠페인은 이러한 연장선에서 탄생한 프로젝트로, 언론이 단순한 보도기관을 넘어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주체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AI 대통령 캠페인은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다. 이는 레바논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언론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안나하르는 AI 대통령을 통해 언론의 사명을 재정의하고, 기술을 통한 사회적 진보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AI가 인간 정치인을 대체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이터와 논리에 기반한 판단은 부패와 사리사욕으로 점철된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레바논의 AI 대통령은 기술과 저널리즘, 그리고 시민 참여가 결합된 새로운 정치 실험의 시작이다. 이 실험이 향후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최소한 지금의 침묵보다는 훨씬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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